뭉크 Edvard Munch (1863 _ 1944)

마돈나 뭉크는 여자를 세 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한편으로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또 체념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 <마돈나>에 나타난 여인에 대하여 '몸을 바치는 여자-성모의 고통스런 아름다움에 싸인다.' 라고 쓰기도 하고, '모든 세계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순간, 너의 얼굴은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익어가는 과일처럼 새빨간 너의 입술은 고통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달싹 벌어진다. 그것은 시체의 미소이다. 바야흐로 삶이 죽음에게 손을 내민다. 죽어서 사라진 무수한 세대와 미래의 세대와의 사이에 인연이 맺어진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뭉크의 나이 30세이던 1893년 12월, 베를린에서 <생의 프리이즈> 연작, <흡혈귀>, <절규>, <입맞춤>, <질투> 등의 연작을 발표하였는데 중심이 된 것은 이 <마돈나>였다.

사춘기 뭉크는 소녀의 모습을 통하여 성(性)에 눈 뜬 청춘기의 첫 반응의 특징인 성적인 자 기 암시와 또 한편으로는 움츠러드는 애틋하면서도 청순한 사춘기 소녀를 표현하려 했다. 이 모티브는 뭉크가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한 작품에서 선택하여 등장시키고 있다. 유화로 처음 제작한 것은 1886년인데, 1890년 공교롭게도 불에 타 없어지므로 해서 다시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뭉크의 여성 초상화나 또 일반적인 여성을 표현한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여성 내면을 감추려는 듯 손을 앞에 가지런히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 이 작품에서 표현되어진 소녀는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이 강한 동경과 불안이 혼합되어 진 내면 세계를 풍부하게 나타내고 있다.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얼굴과 불안을 상징한 듯한 그림자가 인상적이다.

입맞춤 이 주제는 목판화, 유화 등에서도 잘 표현 되어지고 있기는 하나, 동판화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한 선에 의한 담백한 효과를 특징있게 나타내고 있다. 사랑에 향한 눈과 마음은 상식성을 벗어난 인간화된 깊은 존재의 엄숙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창가에서 밝은 빛을 받으며 애무하고 있는 나체상은 매우 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동일한 모티브를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추구한 가운데 각각 다른 개성적인 면을 개척한 영역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두 연인이 포옹하고 있는 상황은 에로틱한 장르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에로틱한 행동에서 개별성을 제거한 상태로 변화시켜 양성의 만남의 보편적 상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양한 판법에 의한 기법으로 드라이포인트, 에칭, 애쿼틴트 등을 결합한 혼합 방법에 의한 표현 효과를 갖고 있다.

죽음과 소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무수한 세대와 장래의 세대와의 보이지 않는 연결을 상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나타내고 있다. 벌거숭이의 천진한 소녀가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해골과 포옹을 하고 있다. 사랑과 죽음이 서로 공존하는 가운데 환희에 잠겨 있는 소녀는 죽음을 외면한 채 현실에만 충실하려 한다. 가장자리에는 정충(精蟲)이 그려져 있기도 하며, 태아가 웅크린 모습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사랑, 죽음이 동존 속에 같이 나타나며 남자, 여자 모두가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다. 죽음을 느끼게 하는 테마는 후에 표현주의 회화에 간혹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 원형(原型)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뭉크의 작품 중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한 작품으로, 유화 작품 외에도 동판화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이 있다. 뭉크의 숙명관을 보는 듯하다.

마라의 죽음 마라는 프랑스 혁명 시대의 정치가로서 자코방 당(黨) 을 이끌고 앞장서서 지롱드 당을 공격했으나 지롱드 당에 동조한 샬로트코르데라는 여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 이외에도 여자에 의해 배반당하는 남자를 주제로 한 작품이 있는데 <아담과 이브>, <삼손과 데릴라> 등의 일련의 내용이다. 뭉크 자신이 여자에 의해 불신과 굴욕을 겪게 되는데, 1902년 오스가르스트란드에 살고 있을 때 부유한 사업가의 딸 투라 랄손과 연애를 하게 되는데 결혼 문제로 다투던 중 그녀의 손에서 권총을 뺏으려다 왼쪽 약손가락의 일부를 잃게 된다. 그 후로 여자를 악마의 화신으로 보는 습관적 이유가 생기게 된 것 같다. 죽음과 증오와 사랑이 동시에 표출되어진 내용은 그의 심리를 적절히 묘사했다고 하겠다.

멱감는 남자들 만년에 뭉크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내가 얻은 건강의 이런 약한 것도 나의 부분이며 더불어 나의 예술이 크게 그 약함의 탓이므로 나의 병을 고치길 원치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뭉크의 극한적인 상황은 강인하면서도 희망찬 남성을 동경의 대상으로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바르네뮌데 트리프틱 >(1907년과 1908년 여름에 뭉크가가 있었던 북 독일의 바르네뮌데에서 제작한 3장으로 된 그림) 가운데 한 가운데의 성인(成人) 부분을 나중에 다시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머지 두 장은 <청년>과 <노인>이다. 그 당시 무질서하면서도 거친 생활에 술만 마시고 방황하던 때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바르네뮌데에가 있었다. 뭉크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내면적이면서도 요약된 강인한 형태와는 다른 밝은 색채가 풍요스럽게 나타나 있다.

빨간 깔개 위에 앉은 소녀 '예술 작품은 결정(結晶)같은 것이다. 결정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도 역시 영혼과 광휘(光輝)를 내뿜는 힘을 가져야 한다. 예술 작품에서는 정확한 외관(外 觀)의 면(面)이나 선(線)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뭉크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울 무렵 그의 나이는 66세(1929년)로서 에에켈리에 겨울 아틀리에를 짓고 만년을 보내면서 고독과 쇠약해진 건강과의 고투 속에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면서 제작을 하게 되는 가운데 내적 상태가 표면에 드러나게 된다. 청순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 빨간 깔개 위에 손을 짚고,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 휴식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붉은 색면이 강렬하다. 회화의 형식으로서의 붉은 색채가 아니라, 지향하는 욕구로서의 정신을 존재시켜 주는 독특한 형상을 느끼게 한다.

등의자( 藤椅子) 곁에 선 裸婦 바르네뮌데에서 1907-8년에 쓴 글 중 '예술은 자연에 대립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다만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온다. 예술은 인간의 결정(結晶)에의 충동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또 1929년에 에켈리에서 한 말 중 '색이나 선이나 면에 의해 재편성을 재현하는 일이 예 술이나 회화의 모티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주관의 표출을 항시 주장하였던 것이다. 만년에 제작한 모델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서, 서 있는 누드를 중심으로 하여 착색되어진 억제된 빨간색, 회색 등의 톤은 원근법을 미묘하게 처리한 공간 속에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밀도있게 표현되어졌다. 뭉크가 여성을 주제로 그린 작품에는 몸을 보호하듯 손을 앞에 놓고 있는 경우와 손을 뒤로 돌린 경우의 두 모양이 있다.
마티스 Matisse Hemi (1869 _ 1954)

화실의 裸婦 1898년에서 99년에 걸쳐 파리에는 새로운 미래적 조형에 열을 띤 젊은 화가들이 아카데미즘에서 근대 회화에로의 최초의 돌파구로서, 인상파적인 화풍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거기에서 각자 자기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리더격으로, 런던으로 신혼 여행차 건너가서 터너를 연구하고, 시냑의 논문 '들라크로아에서 신인상파주의까지'를 읽는 등, 색채의 실험을 거듭했다. 이 작품도 당시의 프레 포비즘에 속하는 것으로서, 나부의 거의 빨간 색채와 그 배경의 강렬한 초록의 대조에 의하여, 점묘풍의 화면을 이루고 있다. 전체의 화면은 격렬한 터치로 되고, 순수한 색채에 의존한 화면 구성을 하려는 마티스의 시도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豪奢 마티스에 있어서 포비즘의 시기는 1905년 부터 8년까지의 짧은 기간동안이었고, 그 이후 차츰 '균형과 순수함과 그리고 조용함'의 예술로 전환되어 간다. 그 무렵의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의 진정제가 될 수 있는 그러한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의 '화가 노트'에 적고 있다. 이 작품은 수채화의 담채(淡彩)처럼 미완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엷게 처리되어 있다. 색채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억제되어 있고, 그 대신 마티스는 자연계의 속에서 나부가 나타내는 움직임을, 한순간 사이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곡선 속에 포착하려 하고 있다. 이 작품에 있어 그는 색채보다 극히 단순하게 데포르메된 데생에 의하여 한순간의 자연과 인간과의 상관 관계를 생명있는 영원성에 부각하려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 상태가 빚는 약동감이 화면을 흐르고 있다.

푸른 나부

댄스 그의 <음악>이라는 작품과 함께 러시아의 무역상인 시츄키의 의뢰에 의하여 그려졌다.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려진 것으로서, 활기 있는 리듬과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푸른 하늘과 언덕의 초록으로 색면 대비를 이룬 배경 속에 다섯 명의 춤추는 댄서들이 손을 마주 잡은 형태는, 생명적인 무한을 갈망하는 암시적 무의로서 화면에는 유동하는 활기로 차 있다. 그것들은 마치 아라베스크 무늬로 화면 전체를 꿰뚫는 어떤 생명적 통일의 리듬을 시각화하고 있다. 색채는 단지 세 가지로, 격렬함과 풍부함을 가지고 있어, 마티스 자신이 '나의 파랑과 빨강과 녹색의 조화는 충분히 스펙트르와 등가(等價)의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벽무늬 속의 장식적인 인물 이 작품은 니이스에서 지중해적인 밝은 광선과 색에 도취하여 그린, '평안과 우아의 예술'을 위한 그의 작풍(作風)을 이루는 그림이다. 여인의 몸매는 직각이 서로 교차하는 직선을 중심으로, 견고하고 힘찬 형태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화면은, 그가 좋아하는 장식적 요소를 가득 채워 호화스럽고 사치한 조용함이 있는 기념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 놓았다. 이 작품에 있어 그는 확실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힘과 장대(壯大)함의 세계에 새로운 창이 활짝 열린 것처럼 눈부신 광경을 이룬다. 바닥에 놓인 카페트의 비스듬히 그어진 직선의 연속은, 벽에 장식된 꽃무늬와 아라베스크의 선과 충돌되는 듯하지만, 그 대조가 한층 마티스가 노리는 장식적 효과를 더해 주고, 더욱 힘있는 화면 효과를 이루게 하고 있다.

꿈 1930년대의 마티스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것은 벽화 <댄스>였다. 이 그림은 1931 년부터 33년 사이에 제작한 <댄스> 가운데의 춤추는 나부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단순한 구도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색조로 나타낸 이 작품은, 대담하고 커다란 화면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팔과 머리로 형성된 역삼각형은 그 형태를 따라 순환하는 운동감과 조용히 잠자고 있는 여인의 정적인 모습이 서로 모순된 양상으로 느껴지게 한다. 지금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피부처럼, 상기된 분홍의 살빛에 가늘고 부드럽게 그어진 윤곽선, 바닥에는 바둑판 무늬를 이룬 짙고 옅은 푸른색이 맑게 얼룩져, 깊은 잠에 빠진 젊은 육체를 받들고 있다.
위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