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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名畵 NUDE

MiCandy 2012. 1. 6. 12:07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 _ 1877)



멱 감는 여인들
1853년 살롱에 출품된, 쿠르베의 최초의 누드화로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루벤스를 연상시키는 풍만한 육체의 여인은, 아름다운 인체를 통해서 정신 적인 이상을 표현한다는 이상주의적 누드와는 거리가 먼 강인한 육체의 힘을 엿보여 준다. 등을 보이고 있는 누드의 여인이 막 물에서 올라오고 있으며, 하녀인 듯한 오른쪽 숲에 앉아 있는 여인이 무언가 말을 받으면서 차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누드의 여인이든 오른손과, 아래 쪽 여인의 손의 표정이 돋보이는데, 현실적인 누드의 여인에 비해, 아래 쪽 여인의 포즈는 다분히 신화화에서 엿볼 수 있는 극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잠자는 금발의 여인
<미역 감는 여인>들과 <화가의 아틀리에>에 이어지는 풍만한 육체의 여인은 쿠르베의 누드화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루벤스나 앵그르를 연상시키는 건강 한 여인의 모습도, 그러나 루벤스나 앵그르에 비해 훨씬 현실적 인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약간 비스듬히 기대 누운 여인은 몸의 일부를 가리고 있을 뿐 풍만한 육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여체는 어두운 배경에 의해 피부는 더욱 황금빛의 윤기를 띠고 있다. 이 작품은 1857년 작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일부 연구가들은 49년, 또는 68년으로 상정하고 있다. 일련의 누드화에 나타나는 특성들과 연결시켜 볼 때 57년이 가장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누드와 앵무새
1866년 살롱에 출품되었던 쿠르베 후기의 대표적인 누드화. 그의 기교는 과잉이라고 말할 정도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데, 쿠르베가 그린 누드화가 태반이 추악하다는 비판을 받은 데 비해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았다. <미역 감는 여인>이나, <수면>과 같은 작품에 비해 여체의 날씬하고도 경쾌한 곡선감은 누드화에서 보는 가장 아름다운 포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앵무새와 희롱하고 있는 장면 설정도 정감적인 표현에 가장 걸맞게 보인다. 기법에 있어서도 지체(肢體)의 균형과 살붙임의 정확성, 그리고 명암의 탁월한 효과 등 현실이면서 현실에 머물지 않는 이상이 묘출되고 있다.




<멱 감는 여인들>, <화가의 아틀리에>에 나타나는 일련의 누드화와 연결되는 건강한 여체를 보여주고 있다. 쿠르베가 다루고 있는 누드는 때때로 미술 학교에 서의 모델 습작과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드 주변의 샘이나 녹야도 전통적인 수법에 의존하고 있다. 다른 누드화와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쿠르베의 누드화가 영웅시되는 것은, 클라크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화가의 눈이 여체를 강하게 포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포즈의 누드화는 레인란텔과 같은 초기 나체 사진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파도와 여인




3인의 목욕하는 여인들




잠 깨움




나부



마네 Edouard Manet (1832 _ 1883)



세느강의 두 욕녀
이 주제는 그의 친구 르노와르에게는 흔한 것이지만 마네에게는 진귀한 것이다. 하지만 르노와르와는 달리 배경을 짙은 녹색으로 입혀 놓았기 때문에 욕녀의 크림빛 육체가 어쩐지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목욕 후의 상쾌한 느낌 같은 것이 감득되는 듯도 하다. 이 그림은 욕녀들의 피부 빛깔에 무척 신경을 쓴 듯한데, 크림 계(系) 빛깔의 미묘한 전조(轉調)에 의해서 촉감성리라든가, 또는 양감(量感)이 물씬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법은 르네상스 이래의 서양 회화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3차원적인 양체(量?)나 공간의 표현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마네는 처음에는 욕녀를 그릴 때 갈색의 담채(淡彩)로 소묘적(素描的)인 표현을 즐겨 왔었다.



가슴을 내놓은 블론드 아가씨
마네의 그림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명한 작품의 하나로서, 그가 곧잘 쓰는 크림 빛 아닌 볼그스레한 피부의 아가씨는 한결 고혹적이다. 대담한 필촉(筆?)으로 사뭇 조형적으로 포착한 이 그림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가볍게 표상하면서도 튼튼하고 짜임새 있는 터치를 도처에 가미시키고 있다. 살결 빛깔이 두드러지게 아름다워 보이는 이 여인은 마치 진주처럼 빛나 있고, 그 광휘는 담록(淡綠)의 배경으로 말미암아 한결 더 돋보이는 것 같다. 빛 속에 녹아 내린 핑크와 백색의 육체는 귀스타브 제프 로아의 말을 빌린다면, '살아 있지만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육체의 아름다운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꽃과 과실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모델 이름은 마그리트이다.



스타킹을 신는 여인
마네나 드가가 끝내 인상파에 동조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에 여체가 있다. 이 그림에서 보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육감적인 유방과 풍만한 육체는 한마디로 관능의 화신이다. 마네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선(線), 그 선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화가이다. 1878년 파리는 만국 박람회로 떠들썩했고, 마네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 파티를 열었는데 이들은 자작시에 자작곡을 붙여 소리 높이 합창했다. 이 무렵 마네는 소품을 그리는 기분으로 이 그림을 제작했는데, 화면 전체가 막 피어나는 꽃처럼 청색과 자색으로 꾸며졌고, 이 감미로운 분위기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여체가 스커트를 걷어올린 채 스타킹의 끈을 매고 있다. 우아한 곡선, 돋보이는 유방 등이 기조색(基調色)의 보호를 받아 비속하지 않은 관능미를 표출시킨 이색적인 작품이다.


위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와토 Jean A. Watteau (1684 _ 1721)



화살을 빼앗긴 큐우핏
장난이 지나쳐 어머니 비너스로부터 화살을 빼앗긴 큐우핏이 그 화살을 다시 뺏으려고 어머니의 가슴팍에 매달리고 있다. 이미 오래된 주제이기는 하나 이 작품의 구도를 와토는 베로네제의 작품에서 빌어 오고 있다. 와토는 비단 베로네제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파의 여러 화가들, 즉 티지아노, 틴토레토 등의 작품을 통해 화려한 색채와 풍만한 육체에 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와토에게 있어서의 비너스는 보다 우아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색채도 또한 훨씬 담백하고 경쾌한 것이 되고 있다. 구도에 있어서는 인물을 전면에 크게 클로즈업시키고 원경을 까마득하게 멀리 생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주피터와 안티오페
잠자는 안티오페(또는 님프)의 나신을 엿보고 있는 주피터(또는 사티로스)라는 관능적이며 신화적인 주제를 즐겨 다룬 것은 베네치아파의 화가들이며, 와토에게 미친 이 파의 영향을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뒤편의 주피터의 힘찬 데랑은 플랑드르의 회화, 특히는 루벤스의 회화를 상기시킨다. 따라서 이 그림에는 베네치아풍과 플랑드르풍이 기묘하게 혼존하고 있으며, 여자의 나신과 남자의 나신과의 강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두 인물을 전경에 크게 클로즈업시키고 원경을 먼 조망으로 처리한 것은 <화살을 빼앗긴 큐우핏>의 구도와 마찬가지이나 인물 처리는 전혀 다르다. 또 주제 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비속한 관능적 테마는 본래 와토에게 인연이 먼 것이 사실이다.



화장
아침에 일어난 여자가 잠옷을 벗고 옷을 갈아 입으려 하고 있다. 왼편에 개 한 마리가이 아침 화장을 들여 다보고 있다. 이와 같은 정경은 은밀한 실내화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로코코적인 관능의 나체화라기보다는 오히려 플랑드르 또는 네덜란드의 풍속화를 생각케 한다. 그리고, 실제로 와토에게는 이와 같은 풍속화적이고 플랑드르적인 사실주의의 일면이 있음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와토가 공상적인 우아함 과는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며, 그는 그의 친구의 콜렉션을 통해 실지로 플랑드르파의 회화를 연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와토는 이 작품 외에도 같은 주제의 작품을 2점 남겨 놓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파리스의 심판
추측컨대, 화상 제르생의 간판의 배경에 나타나는 한 그림을 위한 습작일 것이다. 또 <제르생의 간판> 왼편에 그려진 뒷모습의 부인의 모델로서 이 나부가 쓰여 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가는 목, 좁은 어깨, 자그마한 머리 등은 와토의 다른 여성상에서도 볼 수 있는 와토적 취향의 것이다. 색채를 두고 볼 때에도 < 화살을 빼앗긴 큐우핏>과 연결되는 진주색의 투명한 채색법 또는 청록색의 배경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주제 자체를 두고 볼 때 이 <파리스의 심판>의 정경이 어떠한 시적 발상에 의한 것인지 또는 우의(寓意)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밀레 Jean F. Millet (1814 _ 1875)



귀가중인 양떼
초기에서 점차 농민화로 전향해 가던 중간쯤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그런만큼 이 작품엔 누드화를 주로 다루었던 시기의 제반요소와 농민화로서의 소재적 관심이 함께하고 있다. 아이를 업고 있는, 상의를 벗은 여인의 모습은 누드화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고 오른편으로 반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양떼는 농민화로서의 연결을 시상해 주고 있다. 아이를 업은 여인과 어깨에 농구(農具)를 진 남정네와 양떼를 몰고 있는 앞 쪽의 아이가 가운데 공간으로 집중되면서, 한 가족의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밀도를 엿보여 주고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양떼들이 화면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농민화가 밀레의 세계가 확립되어진다.



水浴
밀레는 농민 화가로서의 자기 위치를 찾기 이전 초상화와 신화화(神話畵)를 그렸고,또 일련의 노동자들의 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 소재가 다소 예외 적이긴 하나,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룬 그림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체의 억센 형체감을 살리려고 한 의도가 노동자들의 그림들과 일치된다. 작품은 남녀가 멱을 감는 정경에서 취재된 것인데, 물에서 올라오는 여인을 남자가 안아서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두 인체가 마치 격투라도 벌이고 있는 듯한 억센 동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밀레가 미켈란젤로에게 매혹되었다고 하는 설이 이 그림을 통해 뒷받침된다.



누워 있는 누드
농민 화가로서의 뚜렷한 방향을 잡기까지 밀레는 한때 누드 그림도 그린 적이 있다. 초상화에서 농민화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커튼을 열어젖힌 안쪽 침대에 등을 돌리고 있는 나체의 여인 모습이 보인다. 침대의 흰 커버와 흰 이불 속에 드러난 알몸의 여인은, 그러나 그 정황에 비해 짙은 관능성(官能性)은 찾을 수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 중의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모델로서의 누드가 갖는 흥미는 그렇게 드러나 있지 않다.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눈이 탐욕스럽지 않다 고나 할까. 그러면서 초기의 초상에 비해 보면, 농민화에서 드러나고 있는 기법이 역력하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롱고스 작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그리스의 전원 시적(田 園時的)인 소설 '다프니스와클로에'에서 취재된 그림 으로, 코르마르의 은행가 토마의 의뢰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다. 사계(四季)를 나타낸 3점(봄, 가을, 겨울)의 타블로와 1점(여름)의 친정화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농민화가로서의 밀레에게는 다소 특이한 신화적 주제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초기파리 시대의 신화적 소재의 그림에서는 엿볼 수 없는 인물이나 배경이 고전적인 완벽함을 보여 주고 있다. 밀레는 이 작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후에 몇 장의 소품으로 남기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필치와 아름다운 색채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위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_ 1640)



승리자의 대관(戴冠)
루벤스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파(派)인 티지아노 미술을 자기 회화의 원천(源泉)으로 삼고 있다. 그 예를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전면 우측에 등지고 있는 여인상은 티지아노 작품에서 빌어온 것이며 루벤스는 자주 이러한 자태를 작품에서 재현했다. 특히 그의 여체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는 관능적인 미의 특징을 표출하고 이 미(美)를 여러 자세의 여체로 특징지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배후에서 본 여체와 뒤틀리고 있는 정면상(正面像)의 여체를 볼 수 있다. 한편 티지아노의 <사랑의 우의(寓意)>에서 정(靜)과 동(動)의 두 여인 대조는, 여기서도 갑옷을 입고 있는 승리자와 대관을 시키고 있는 여인 형상으로 표출되어 있고 등지고 있는 여인과 대관을 시키고 있는 여인 형상으로 그 대조를 보게 한다. 밝은 색채와 대조적인 색조 또한 화면의 극적인 열기를 고조시킨다.



4대륙
인체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는 미켈란젤로를 생각케 한다.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수련한 결과는 베네치아 파(派)의 색채 표현이 결정적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인체표현(人體表現)도 그에게 중요하였다. 루벤스는 독자적인 양식을 이에 구현하였으나 르네상스 미술의 추억은 그의 작품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이 그림 좌우편의 노인의 자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메디치(Medici) 가(家)의 묘비 조각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림은 루벤스 특유의 밝은 채색과 장대함을 나타내고 있고, 그의 사실적 표현과 장려함을 보이고 있다. 4대륙을 의인화(擬人化)하고 상징화하고 있는 이 작품의 구상은 거칠고 늠름함과 수려함 등이 대조를 이루게 하고 있으며 원시 사회와 문명 사회의 공존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화려하게 조각된 꽃병과 야생 동물로 표상(表象)되어 지고 있다.



레우키포스 딸의 약탈
이 작품의 특징은 X자를 형성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구성 요소들은 그 자태의 방향에 의해 원(圓)을 이루고 있다. 두 여인을 떠받치고 있는 남자는 땅 위에 쓰러지려고 하고 있는 여인을 향하고 있고, 또 그 여인은 말에 매달린 사랑의 상징 큐우핏의 머리를 돌리고 있으며, 그 방향은 레우키포스를 약탈하는 남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바로크 예술 양식을 나타내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엉키고 있는 요소들은 생의 약동과 그 맥박의 연락이며, 루벤스는 이에 관능과 건강에 넘치는 육체미로 나타내 주고 있다. 여인들의 탄력있는 아름다운 살결은 거칠고 검은 색의 남자들의 피부와 힘찬 근육에 윤기있는 말의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관계된다. 제우스 신(神)의 두 아들이 멧시나의 두 왕녀를 이탈하는 비극을 소재로 한 것이다.



三美神
THE THREE GRACES 1630년경 판 유채 221X181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파리스의 심판
여체의 관능적인 풍만한 몸매와 그 건강미에 이상(理想)을 추구하였던 루벤스에게는 그리스 신화의 미신(美神)은 적합한 주제였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라파엘로와 티지아노의 작품을 보았고, 고대 조각의 미를 수학한 루벤스는 <三美神> 또는 <파리스의 심판>을 여러 번 그렸다. 이 작품에서 세 미신은 탄력있고 윤기있는 육체의 촉감적인 관능미를 과시하고 있다. 루벤스는 이와 같은 여체의 특성을 직접 광선으로 조명시켜 그 형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 여신들의 표출을 충분히 하기 위하여 루벤스는 360도 각도로 회전시키고 있다. 정면, 측면, 후면으로 세 여인이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루벤스의 여체에 대한 미적 관찰이라 할 수 있다. 화면 좌측 나뭇가지 위의 올빼미는 지성을 표상(表象)하고, 땅 위의 투갑과 창은 무력(武力)을 표상하고, 공작새는 사랑과 결혼을 표상한다.



毛皮(모피)를 걸친 헬레네 푸르망
루벤스는 두 번째의 처 헬레네를 자신의 원숙한 기량으로 기념비 적인 미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사적인물(史的人物), 사적사건(史的事件)을 '마리 드 메디치'의 주제 작품으로 집체화하여 자신의 예술을 결정체로 하였듯이, 여인상, 여체미를 이 작품을 통하여 완결짓고 있는 셈이다. 모피의 여인이라는 구상은 티지아노 작품에서 얻은 것으로 생각되고, 여인의 아름다움은 헬레네로 표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경은 루벤스가 이 작품을 마음으로 새긴 것으로, 헬레네에게 주는 작품이라고 그의 유언장에 기록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녀 또한 루벤스 사후의 재혼 생활 속에서도 이 작품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한다. 인물 위주의 이 전신상은 배경, 의상 등이 짙은 어둠의 단일한 색조로 되어, 밝은 살 색과 대조되어 모든 장식성을 배제하고 있다. 살색 중심의 작품이다.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1606 _ 1669)



다윗王의 편지를 든 밧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
1654년경 캔버스 油彩 142×142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구약성서에서 주제를 따온 작품으로서 다윗의 아내가 되라는 사자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으나, 동시에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을 두려워하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종단에는 다윗을 배반해야 하는 운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헨드리키에를 모델로 한 누드화이기는 하나 렘브란트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밧세 바의 마음의 갈등을 그려내는데 있었다. 작품의 구도 자체는 고대의 부조(浮彫) 작품을 묘사한 동 판화에서 빌어 온 것이기는 하나 그 구도 이상으로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이 밧세바의 얼굴 표정이었다. 요컨대 렘브란트는 고대의 구도 원리에 따르면서 그것을 그의 고유한 비극적 드라마로 묘출(描出)한 것이다.



목욕하는 수잔나 SUSANNA SURPPISED BY THE ELDERS
1637년경 板 油彩 47.5×39Cm 덴 하그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소장
<목욕하는 수잔나>라는 주제는 르네상스 이래 즐겨 다루어진 테마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거기에는 나체의 수잔나와 그것을 숨어서 바라보는 두 장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이 작품에서는 두 장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 희미하게 한 장로의 얼굴이 보일뿐이다. 정원에서 막 목욕하려는 수잔나는 인기척에 놀라, 놀라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풍만하고 싱싱한 육체가 햇볕을 온 몸에 받고 하나의 광선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작품이 그려지기 일년 전 렘브란트는 역시 여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제작한 '다나메'를 그리기도 했거니와, 이 작품 역시 나부(裸婦)에 대한 관심에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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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Sanzio Raffaello (1483 _ 1520)



三美神
작품 <騎士의 꿈>과 한 쌍으로 취급되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조각 이래, 일반적으로 삼미신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그 소재는 그리이스 신화에서 발취한 것이다. 세 여인은 각기 손에 사과를 갖고 있으며,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인체의 표현은 유연한 곡선과 부드러운 육체감을 미묘한 색조로 나타내고 있으나, 조형적인 구체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젊음의 생동감은 탄력있는 육체의 표출로 시사되어 있고, 우아한 분위기는 여인들의 조용한 자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대자연이 전개되고 있는 공간에서 세 여인의 형상은 꿈이나 환상을 연상케 한다. 주제나 그리스 신화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이 전설적인바, 작가는 이 성격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갈라테아의 勝利
라파엘로 작품 중에서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삼은 것은 드물다. 라파엘로의 후견인이었던 당시의 은행가 아고스티노 기지의 별장 파르네지나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하여 작품이 제작되었다. 바다의 여신 갈라테아는 두 마리의 돌고래에 이끌려 개선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반인반어의 바다의 신 트리톤과 바다의 요정들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갈라테아를 반기고 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생의 즐거움과 찬미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것이다. 한편 라파엘로는 이와 같은 신화의 소재를 통하여 당대의 고전에 대한 가치관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자못 그림은 동적이고 또한 극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종교화의 정적인 숭고함에 비교를 할 수 있다. 이 그림의 형상은 형체 구조의 정확한 묘사로 입체감을 주는 조각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젊은 부인의 초상(라 포르나리나)
시대적인 인물을 나상으로 보이는 초상화는 드문 예가 된다. 상반신이 나상으로 나타나 있는 이 젊은 부인은 라파엘로의 애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만년에 이르러 라파엘로는 세속적인 화풍의 표현이 강해지고 있음을 이 초상화에서도 보여 주고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있는 두건은 그 질감의 사실성인 성격에서 촉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또한 복부를 가리는 의상은 육감적인 여체를 느끼게 할 정도의 질감의 사실성을 보여 준다. 여인의 표정에 있어서도 지난날의 고귀성과 우아함은 사라지고 감각적이거나 육감적인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젊음의 생기는 탄력 있는 피부로 감지케하여 주고 있으며, 또한 인물의 외양적 모습은 어두운 배경에서 부상시키고 있다. 인품이나 정신적 고귀성을 반연하는 초상화는 이제 외면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의 초상화로 변해지고 있다.


레오나르도 Leonardo da Vinci (1452 _ 1519)



레다(소도마派?)
LEDA(SCUOLA DISODOMA ?) 1498-9년 板 油彩 112×86Cm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화고(畵稿)의 형식으로 존재하여 원화는 분실되었다고 생각된다. 제작 연대는 1498년부터 1499년 사이이다. 레오나르도의 <레다>에 라파엘로의 모사 스케치가 있지만, 그것은 1503년 이후에 피렌체에서 그린 것으로서 적어도 그 이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레오나르도의 머리 형태에 대한 추구는 독특한 것이 있어서 밀라노 시대의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 <레다> 화고를 밀라노 함락 후 피렌체에 가지고 갈 때 죠르죠네에게도 보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죠르죠네의 같은 주제의 그림이 제작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이 그림은 '아쎄의 방'을 그렸을 무렵, 밀라노 시대 최후 시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두 비너스
DUE VENERE 油彩 96×125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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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와르 Pierre A Renoir (1841 _ 1919)
감각적(感覺的)인 즐거움의 경지(境地)



디아느
르노와르의 처녀작 가운데 일품(逸品)이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 살 때 그린 작품으로 화가로서의 첫발을 기념하는, 이를테면 [기념비적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사냥의 여신(女神) 알테미스, 즉 디아느가 금방 사슴 한 마리를 활로 맞춘 다음, 바위 위에 걸터앉아 노획물을 대견스레 굽어 보고 있다. 이 여신은 별로 신(神)답지도 않게 그려져 있다. 오히려 관능적인 풍만한 젊은 여자, 즉 요녀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처럼 여체에 충만한 양감(量感)은 선배인 쿠르베의 영향 탓이라고 보여지며, 배경의 나무나 하늘의 느낌은 코로의 자연 묘사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선배들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도 독자적인 기법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浴女와 개
르노와르의 그 숱한 누드 가운데에서도 가장 윤곽이 뚜렷하고 선명한 이 회화는, 고혹적인 색감을 배경 숲과의 대비에 의해 발랄하고도 풍만하며 또한 생동감이 넘치는 나부의 감각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S. 레이멕은 이 나부의 포즈가 고대 그리이스의 비너스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고전적인 분위기를 즐기던 살롱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서 이 그림을 제작한 것 같다. 대담한 필촉(筆觸)이 빚어낸 이 아름다운 여인상은 쿠르베의 대담함과 코로의 정묘(精妙)함을 버무린 듯한 느낌이다. 밝은 외광(外光)으로 노출된 나부의 요염한 살갗이 개와 대조되면서 유난히도 고혹(蠱惑)을 느끼게 한다.



나부
1888년 캔버스 유채 56X46.3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햇빛 속의 裸婦
비너스가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르노와르의 이 나부는 무성한 숲 덤불을 비집고 빛나는 햇빛 속에서 태어난 현대판 비너스라고나 할까! 거친 붓자국의 뿌우연 빛깔 속에서 풍요롭고도 요염한 여체가 어슴푸레하게 부각되었다. 제2회 인상파 전람회에서 [모델이 마치 수포창(水泡瘡)에 걸린 것 같다]는 험담을 들을 정도로, 풀빛으로 얼룩진 볕살의 효과는 대단하다. 얼굴, 어깨, 젖가슴 등 몸뚱이 전체에 눈이 부실 정도로 태양의 직사광선이 감싸고 있는 이 여체는, 마치 숲 속의 요정과도 같은 동화적 분위기마저 느낀다. 배경인 수풀도 역시 햇빛을 듬뿍 받아 하나로 버무려진 아름다운 색채의 효과를 내고 있다. 순간적인 색채의 소용돌이를 잘 감득한 작품이다.



빠리스의 심판
1908년 캔버스 유채 80X99.4Cm 개인 소장



屋外에 앉은 여인
[누드를 그릴 바에야 누구나 그 그림을 보고 그 유방이나 등을 만지고 싶도록 그려야 할 것이다.] 르노와르는 그의 만년에 이렇게 술회했다. [매만진다]는 말은 어쩌면 그의 예술적 생애의 [ 키워드 (key word)]일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정말이지 유방과 등을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고혹이 물씬 풍긴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마흔 셋 때의 작품이니까, 이 무렵부터 차츰 옷을 입은 부인으로부터 나부로 옮아가는 시기인데, 후반기에 들어가면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은 누드를 중심으로 한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화면 가득히 나부를 놓아 삼각형의 구도법을 쓴 이 그림은, 부드럽고 풍만한 육체의 질감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를 만지는 慾女
[만일 여인의 유방과 궁둥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이는 르노와르의 유명한 말이다. 이 처럼 그는 여인의 육체에 심취(心醉)되어 그의 풍려(豊麗)한 색채 감각으로 즐겨 여체를 그렸다. 이 작품은 나부가 등을 보이고 앉아 지금 막 수욕(水浴)을 마치고 바위에 걸터앉아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유방과 궁둥이가 한결 돋보인다. 이 여인의 등과 궁둥이가 유난 스레 풍요로와 여체의 원숙한 매력을 물씬 풍겨준다. 이 양적(量的)인 육체를 짙은 녹음 앞에 놓아 자연의 청신한 빛 깔과 여인의 뜨거운 육감을 하나로 버무려서 풍윤한 색채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 감는 浴女
1895년 캔버스 유채 92.7X74.3Cm 워싱턴 국립박물관 소장



浴女들
풍만한 세 처녀가 방금 물에서 나와 다정스레 뭔가 밀어를 나누고 있는데, 우선 이 세 욕녀가 그림의 전경(前景)을 차지하면서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삼각형 도법(도법)을 지키기 위해 기묘한 자세를 각각 취하게 한 것 같다. 이 그림은 르노와르의 추이(推移) 시대를 대표하는 최대의 걸작으로서, 이 시대의 특색을 유감없이 나타내 주고 있다.



浴女
잔잔하게 시냇물이 쫄쫄거리는 계곡에서 막 목욕을 끝내고 상쾌한 기분으로 바위 위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나부 상이다.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약간 야생적인 주위 분위기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와는 좀 괴리감(乖離感)을 느끼게도 하며, 따라서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이도 보이지만, 르노와르는 이 대조(contrast)를 역(逆)으로 이용하여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좀 거친 터치로 바위들을 그리고 있어, 어떻게 보면 심산 궁곡처럼 후진 곳에서 이 욕녀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살결이 고운 육체를 드러내고 있어, 더욱 압도되는 듯한 황홀감을 갖게도 한다. 이와 같은 나부의 기법(技法)은 고전파의 영향을 받아 명쾌한 표현으로 옮아가는 시절에 익힌 것이다.



블론드의 욕녀
누드를 그리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는 서양 회화 가운데에서, 목욕하는 여인은 그 한 분야로서 주요한 주제가 되어 왔다. 나부와 자연이 하나로 잘 융합되어 있는 그림이다. 수욕(水浴)의 습관을 르노와르는 그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목욕하고 막 나온 여인의 나른한 기분마저 잘 표현하고 있다. 르노와르가 벌거 벗은 여인을 그리는 주지(主旨)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육체 표현에 있는데, 이를 살리기 위해서 자연의 청신한 푸른(녹색과 청색을 잘 조화시킨) 빛깔을 밝게, 그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화면 전체가 색조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나부 상이다.



블론드의 浴女
르노와르의 나부상은 후기에 접어들수록 그 육체의 질감 표현에 있어 풍만함을 보여 준다. 이 원숙한 욕녀상을 르노와르 예술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고 있다. 젊고 건강해 보이는 나부의 자연스러운 포즈가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어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생생하고 순박한 색감을 미묘하게 살리고 있다. 부드러운 필촉이 신선한 색조로 다스려져서, 보드랍고 탄력 있는 여체를 회화적으로 완성시켜, 순수한 감각의 희열을 맛보게 한다. 대비(對比)되는 빛깔의 효과에 의해서 육체의 그 어떤 부분도 싱싱하고 발랄하고 탐스러운 풍윤한 감촉을 지니게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결코 저속한 관능 같은 것을 느끼게 하지 않는, 프랑스적인 감각성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위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갱 Paul Gauguin (1848 _ 1903)
원시(原始)의 세계를 찾아나선 예술가



나부습작(裸婦習作)
고갱은 일요화가(日曜畵家)로서 코로나 쿠르베의 영향에 의한 그림을 그리다가 1874년 피사로와 만나 차츰 당시의 파리 화단에 물결치고 있던 인상파(印象派)의 화론(畵論)에 공감하여 갔다. 이 작품은 1881년 제6회 인상파전(印象派展)에 출품되었는데 그때 유이스만스의 격찬을 받아 하나의 일요화가에 지나지 않던 고갱의 이름을 크게 높이는데 성공한 그림이다. 유이스만스는 '조금 부풀은 듯한 허벅지에 이어져 있는 하복부나 그늘진 으슥하게 된 둥근 유방 아래의 잔주름, 다소 메마른 무릎의 관절이나, 손목의 볼쏙한 부분 등은 얼마나 많은 진실이 담겨져 있는 것이겠느냐'라고 했지만 확실히 여기에는 알몸 그 자체에 접근 하려는 일종의 생생한 욕구가 느껴진다. 그림의 모델은 고갱 집의 가정부로서 젊을 때엔 들라크로아의 모델을 한 적도 있었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
'그러나 나는 50호의 그림을 한 점 그렸다.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 하나가 두 사람의 타히티 여인에게, 타히티 사람인 마리아와 예수를 나타내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파레오를 걸친 나체화이다. 파레오라고 하는 것은 꽃모양이 있는 일종의 면포(綿布)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는지 허리에 감는 거야. 배경은 지극히 어두운 산과 꽃이 피어 있는 나무들, 길은 짙은 보라색으로 전경은 에머랄드 그린, 왼편에는 바나나가 있다. 나는 이 그림이 제법 마음에 든다.'(1892년 3월 11일 몽프레에게) 고갱이 브르타뉴 이후 타히티에서도 화면에 간혹 기독교적인 주제를 취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중경(中景)의 두 여인의 모습이 자바 사원의 대상 부조(帶狀浮彫)에서 가져온 것은 원시의 신성(神性)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마, 질투하고 있니?
1892년 7월 고갱은 몽프레에게 '나는 최근 모델없이 나체화를 한 장 그렸다. 물가에 두 여인이 있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쓰여 있다. 바로 이 그림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샤를르 모리스는 이 정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영(水永)을 하러 온 두 자매가 더운데도 동물과도 같이 우아하게, 싱싱하게 몸뚱이를 뻗치고 중얼중얼 하며 지금까지의, 또 지금부터의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돌연 말다툼이 벌어진다. 뭔가를 생각해 낸 것이다. '어마, 질투하고 있니?' 이 대담한 구도에 두 인물의 누움과 앉음의 배치, 양광(陽光)과 음영(陰影)의 배치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회화(會話)를 누구나 상상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히티란 한 원시적인 낙원에 사는 한가로운 주민(住民)의 생활을 단면적(斷面 的)으로 잘 느끼게 해준다.



아이타 파라리
파리에 돌아온 고갱은 9월에 몽파르나스 가까이에 있는 그랑 쇼미에르 거리에 아틀리에를 빌려 제작을 하다가, 곧 베르생제트리크스 거리의 아틀리에로 옮겼다. 고갱은 이아틀리에에서 자바 태생의 키가 작은 혼혈의 안나와 함께 살면서, 목요일에는 손님들을 초대하여 법석을 떨었다. 아마 그것은 이미 자신의 육체 일부가 되어 버린 타히티를 떠나, 그가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던 괴로운 몸부림 같은 것이었을 게다. 타히티의 풍토적(風土的) 향기(香氣)를 안나로부터 찾으려고 했다. 그가 모래 빛깔에서 자주 보여준 보랏빛이 감도는 분홍색을 배경에 대담하게 밀어붙이듯 평면적으로 칠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밝고 투명한 푸른 색이, 검은 피부의 안나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그를 파리에 붙들어 놓을 수 없는 불안이 감도는 화면에는 온화함이 없다.



망고의 女人
'나는 세로 1미터, 가로 1미터 30센티의 그림을 막 끝 낸 찰나다. 지금까지의 어떤 것보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록의 바닥에 나체인 여왕이 비스듬히 기대이고, 시녀가 과일을 따고, 두 노인이 굵은 나무곁에서 지혜의 나무에 대하여 말을 주고 받고 있다. 배경은 해안이다 . 나는 여태껏 한 번도 색채의 점에 있어 이렇게도 무게있고 장대한 울림을 가진 것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개는 당번을 서고, 오른쪽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울고 있다.' (1896년 4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 1895년 3월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갔다. 다시 그곳에서 한 해를 넘긴 그의 희열이 이 장대한 색채와 행복감에 차 있는 이 미묘한 하모니 속에서, 점점의노랑과 빨강을 빛내며 안정감을 전달하여 준다.



네바모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는 단순한 나체화에 의하여 지금까지 미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호사함을 암시하려고 했던 거야. 전체는 일부러 어두운 색으로 가라앉혔지. 이러한 호사함을 만드는 것은 비단으로도, 빌로도로도, 삼베로도, 금으로도 되는 게 아니고, 화가의 손에 의하여 풍부한 것으로 되는 마티에르, 오직 이것으로만 가능해. 잡다한 것은 필요없고, 단지 인간의 상상력만이 그 환상에 의하여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는 것이지. 제목은 <네바모아>, 에드가 포의 큰 까마귀가 아니라 문지기가 딸린 악마의 새야. 그리는 것은 서툴지만- 지나치게 신경이 쓰여 발작적으로 일을 하고 있음-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나로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1897년 2월 14일 몽프레에게)



母性
초록의 대지 위에 한 여인은 과일을 들고, 한 여인은 꽃을 들고 서 있다. 두 여인의 보호 아래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는 타히티의 성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의 뒤쪽에는 노란색 하늘, 그 속엔 분홍빛 구름이 걸려 있고, 오른편 하늘로 내려온 나뭇가지에는 꽃이 매달렸다. 대담한 색 배치와 건실한 구도로써 힘찬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고갱의 어머니 아리느는 고갱이 하급 선원으로 항해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눈길은 부드럽고도 위엄이 있으며 맑고 애정이 넘쳤다.'고 말했었다. 그는 그의 딸에게 아리느라는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붙여 사랑했었는데, 1896년 딸이 급사하여 그는 심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은 항상 그에게 깔려 있던 슬픈 마음의 바탕에서 우러난 행복한 모성에의 찬가이다.



바이루 마치
바이루마치란 원래 마오리 신화에 나오는 종족의 창시자 타아로아의 아들 오로의 아내이다. 오로는 인간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싶어서 어떤 호수의 근처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 작품 속의 바이루 마치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밝은 빨강의 배경에 금색으로 빛나는 육체를 비스듬히 기대고, 그 뒤에 옥좌(玉座)와 같은 의자, 두 사람의 시녀, 도마뱀을 밟고 선 노랑새가 함께 엑조틱한 화면을 이루고 있다. '노아 노아'의 초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 그녀는 키가 큰 여자로 타는 듯한 태양빛이 그 황금색의 어깨 위에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젊은 아가씨는 바이루마치라고 불려지고 있었다.' 고갱은 타히티의 여인들에게서 이러한 신화를 투시한 것일 게다.



빨간 꽃과 유방
이 작품은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의식적인 그의 원시주의적(原始主義的)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의식을 떠나서 간결한 구도로 인공적(人工的)인 단순화(單純化)나 양식화(樣式化)의 흔적도 없이, 두 여인의 포즈에도 고갱이 가끔 쓰는 자바나 이집트의 그 양식도 볼 수가 없다. 젊고, 그래서 아름다운 매력을 몸 속에 가득히 지니고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것은 유럽인이 꿈꾸어 오던 이브(Eve)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반대적 이브도 아니다. 그런 대립을 뛰어넘은, 싱싱한 한 현실로서의 여체(女體)인 것이다. 빨간 꽃과 젖꼭지, 입술 등의 색에서, 오렌지빛, 노랑, 그리고 청록의 밝은 치마에서 차츰 어두운 암록색 검정의 머리칼과 치마색까지 차분한 하모니를 이루고 화면은 풍부하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선물
앞 쪽의 작품들이 대부분 타히티에서 일상적인 모습들을 그리는 듯하면서도, 상당히 고갱 내면적인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는 상징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본 다면, 이 무렵에 그린 그의 작품들은 그런 그의 강한 의식을 떠난 순수한 일상적인 현실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타히티 시대의 대표적인 모자상 (母子像)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히바 오아 섬에서 그린 이 작품에는 섬사람들의 일상 생활의 단면을 통한 고갱의 애정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인에게도, 그것을 지켜 보고 있는 왼쪽의 여인에게도 양식적(樣式的)인 강조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일상성을 묘사한 풍속화적인 작품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고갱이 인간의 내면을 투시하는 관찰안(觀察眼)과 닦아온 그의 조형적 형식미의 승화와의 사이에 이루어진 균제의 예술적인 격(格)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부채를 든 아가씨
이 작품은 그가 히바오아 섬에 옮긴 다음 해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이 섬에 옮겨 온 이후에 그린 여인들은 타히티에서 그린 것처럼, 어깨가 넓고 굵은 팔을 가지고 있지 않고, 반대로 부드러운 몸집에 소녀적인 가냘픔을 보여준다. 이것이 실제적인 모습인지, 고갱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서 반영된 모습인지는 몰라도, 거기에는 찬탄보다는 애정이, 양식보다는 친밀한 일상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소녀와 같은 부드러운 몸매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으나, 그 구도, 그리고 인물과 의자와의 결구(結構)는 대단히 건실하게 이루어져 있다.



未開한 이야기
만년의 고갱은 이 섬의 여러 가지 전설에 귀를 기울이고 흥미를 느낀다.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의 이야기로, 때로는 신비하게, 또 때로는 상징적인 성격으로 화면을 이루어 나간 것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불상(佛像)과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젊은 남자와, 그 한쪽에 가까이 붙어 앉은 젊은 여인, 그들을 둘러싼 나무들과 꽃들, 이것도 고갱이 히바오아 섬에서 듣고, 보고, 느낀 이야기의 한 장면일 것이다. 그 배후의 기이한 인물은 고갱의 퐁 다벵 시대의 야코브 마이 에르 데 항이다. 곱사등이며 조그맣게 생긴 사내로서, 항상 20파운드나 되는 성서를 들고 다니는 이 남자를 여기에 그림으로써 고갱은 스스로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그리려 했던 것 같다. 그의 과거에 힘들고 괴로웠던 나날이 만년의 그가 본 섬의 일상성에 결합되었다.

위 자료는 청소년세계 www.youth.co.kr 에서 만든 것을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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